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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봉명장 안에서는 어떤 사건이고 아는 사람들이 많았을 터인데, 그 사람들이 이십 년이

란 세월 동안에 모조리 죽어 버리고, 단 한 사람도 남지 않았단 말인가?’늙은 여승이 아

가씨에게 물었다.”그들이 저절로, 자연적으로 죽은 줄 아느냐?””우리 오빠가 수많은 사

람을 죽였나요?””잘 생각해 보렴 ! 사실은 너의 부친이 저지른 것이다.”아가씨는 갑자기

얼굴빛이 백지장처럼 창백해졌다. 바싹 다가서면서 물었다.”우리 아버님께서 정말 그런

못된 짓을 하셨단 말인가요?””너는 너의 스승의 말도 믿지 못하겠단 거냐?”아가씨로서는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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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말 꿈에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. 그렇게 마음씨 착하고, 누구에게나 점잖게 굴어

서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아버지가 그런 못된 일을 저질렀다니? 그것은 평생을 두고

인의(仁義)를 위하여, 살아 온 까닭이라고도 생각해 봤다.그러나 이제 스승의 말을 듣고

보니, 자기의 아버지란 사람은, 비단 가장 위선적인 군자(君子)일 뿐더러, 또한 사람을

잡아먹어도 뼈하나 남기지 않는 마왕(魔王)같이 여겨졌다.나이 어린 순결한 처녀의 마

음으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일이었다. 따지고 보면, 하나의 천진

난만한 아가씨, 세상 물정을 모르는 처녀 몸으로 무예계의 복잡 다단한 은원(恩怨)관

계니, 인심이니, 죄악이니 하는 것은 모른다는 것이 도리어 당연한 일이다.늙은 여승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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은 천천히 고개를 쳐들었다.”얘! 인생이란 누구나 한 가지 잘못을 저지르기 마련인 것

이다. 너의 부친에 대해서 그렇게 실망할 것까진 없다.””스‥‥‥ 스승님 !”아가씨의 음성

은 몹시 떨려 나왔다.마음씨가 한없이 착하기만 한 아가씨는 제 오라비가 잔인 무도한

짓을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. 그러나 자기의 부친까지 그런 인물이리라고는

절대로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었다.”스승님 ! 그게 정말입니까?””물론, 거짓말이 아니

지.””그러면 스승님께서 걱정스럽다고 하시는 것은, 그 신영시자란 사람이 원수를 갚

으러 나타날까 해서 두려워하시는 거군요?””맞았다! 나는 일찍부터 왜 그런지 이런 예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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감이 들었다.””모든 사정을 저에게 자세히 이야기해 주실 수 없을까요?”늙은 여승은

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.”얘야! 그것은 너를 더욱 괴롭게만 할 것이다. 지금은 이야기

하지말기로 하자. 나중에 네가 절로 알게 될 날이 있을 게다!”아가씨는 자기 스승의

성미를 잘 알고 있었다. 늙은 여승은 무슨 일이나 남에게 주책 없이 이야기하기를

싫어했다. 그래서 그 이상더 추궁해 물을 수도 없었다. 아가씨는 가벼운 한숨을 내쉴

뿐이었고, 양미간에 가벼운 수심이 서리기 시작했다.늙은 여승은 갑자기 입가에 미